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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3) 2011~2020

산책: 4900원 주고 산책, 2015.

by 양웬리- 2019. 10. 1.

들어가며

 

<산책>이 처음 태동한 것은 20124월이었다

 

출판이랍시고 시작한 지 20년이 넘었지만 제대로 출판을 하지도 못했고, 이런저런 어려움 탓에 외도도 많이 하다가2 000년 들어서면서 모든 외부 일을접고 다시 출판의 길에 매진하기로 결심했다.

스물두 살 때 출판에 평생을 걸겠다고 한 녀석이 고작 먹고사는 일에 목을매서야 되겠느냐? 너는 도대체 왜 그 나이에 출판을 하겠다고 다짐하였느냐? 좋은 직장 때려치우고 나와 출판을 한 까닭이 뭐냐?”

갑자기 그 어린 나이로 돌아갔던 것이다. 그리고 다짐했다.

내가 내고 싶은 책을 내자.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바로 그 책을 내자. ? 지금까지 모은 걸 다 쏟아 붓자. 그리고 모아놓은 돈, 다 떨어지면 그때 그만두자. 운명일 테니까. 그런 다음에는 우동 장사를 하건 김치찌개 전문점을 하건 굶어죽기야 하겠느냐!”

 

그렇게 마음먹고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도서출판 서해문집과 파란자전거 출판사를 새롭게 시작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책을 출간하는 게 기뻤다. 전에는 한 권 한 권 출간할 때마다 노심초사勞心焦思하고 팔리지 않으면 절망했다. 그러나 그때부터는 출간되어 책이 선을 보일 때마다 즐거웠다. 그런데 더욱 기적같은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났다. 팔리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책을 출간하기 시작하자 오히려 먹고살게 된 것이다.

그래서 우동 장사와 김치찌개 전문점으로 큰돈을 벌 기회는 잃었다. 사실 요즘 같은 먹방, 쿡방 시대에는 음식장사가 최고일 텐데. 그래도 1년에 60종이 넘는 책을 출간하면서 그래도 내 삶을 건 보람이 있구나. 어린 녀석이 세운 꿈을 하늘도 대견해 하시는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한없이 감사하며 하루하루 살아간다.

 

그런데 2012년 봄, 갑자기 화가 나기 시작했다. 출판, , 문화는 사회로부터 도외시되고, 사회는 지성보다는 무지와 야만의 세계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출판계는 오히려 과거의 공동체 의식에서 벗어나 개개 출판사의 이익을 추구하고 사회적 정의보다는 업계의 이익을 중시하는 듯했다.

이건 아니다!

그래서 사회적 의제議題가 발생할 때마다 여러 선후배들에게 제안했다. 싸우자고. 그러나 잘 되지 않았다. 그때부터 결국 나는 출판계 밖으로 나아가기로 했다. 화가 나서 그 안에 있기가 힘들었다. 나이가50 을 넘어서 60을 향해 가고 있었는데 치기稚氣와 만용蠻勇, 절제節制를 배우지 못했으니, 신경정신과 출입을 한다 해도 누굴 탓하겠는가.

 

그러니 <산책>은 치기와 만용과 무절제의 산물이다. 신경정신과 출입의 산물이다. 내가 꿈꾸는 세상이 현실에 비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꿈꾸는 것도 죄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평균 3개월에 한 번 출간해 무료로 독자, 출판 관계자, 도서관 관계자분들에게 드리던 <산책>은 세월호 참사가 나던 시기에 한 번 걸렀고, 그 후부터 약간씩 늦어져 이제 10호를 출간했다.

그동안 출간한 <산책> 가운데 오늘 이 순간에도 의미가 있다고 여겨지는 글 몇 편을 모아 출간한다. 이건 오로지 내 개인적 사고와 행동의 산물이다. 시대를 탓하지만 평안히 살아가는 이들이 훨씬 많지 않은가 말이다.

 

!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덧붙인다. <산책>따위 찌라시가 필요 없는 시대를 꿈꾼다.

 

2015. 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