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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정2

재판정 참관기 2_전봉준 재판정 참관기, 2016. 발문: 우리는 왜 100년도 더 지난 오늘, 전봉준 장군 신문을 참관하러 갔나? 갓 마흔 살을 넘긴 나에게 온 고을 사람들이 찾아와 "당신이 나서야 합니다. 더 이상 백성들은 견딜 수가 없으니, 당신이 앞장선다면 우리 모두 따르겠습니다"라고 한다면, 여러분의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하물며 앞장서는 순간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면? 아마 쉽사리 결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고통 속에서 눈물과 절망으로 살아가는 이웃들을 위해 기꺼이 운명을 받아들인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전봉준을 비롯한 동학농민운동의 지도자들입니다. 그들은 백성들의 고혈을 쥐어짜기에만 혈안이 되었던 조선의 탐관오리들을 대신해 정의를 외치고, 조선을 집어삼키려는 일본군에 맞서 싸웠습니다. '동학농민운동'이라고 알려진 역사적 사건의 세부 내용은.. 2019. 9. 23.
재판정 참관기 1_안중근 재판정 참관기 발문: 우리는 왜 100년도 더 지난 오늘, 안중근 의사 재판을 참관하러 갔나?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역에서 저격한 때는 1909년 10월 26일었다. 이 무렵, 우리나라는 1905년 을사늑약 체결로 인해 외교권을 박탈당하여 대외적으로 독립국가로서의 위상을 상실하였다. 또한 일본제국주의는 우리나라에 통감을 파견하여 사사건건 내정을 좌우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는 국제적으로도 혼란의 소용돌이가 몰아치는 시기였다. 1894년 발발한 청일전쟁에서의 승리를 통해 동아시아의 맹주로 자리하고, 나아가서는 아시아에서 자신들의 지위를 인정받게 된 일본은 그로부터 10년 후인 1904년 러일전쟁을 통해 만주 및 우리나라에 대한 지배권을 획득하고, 미국, 영국 등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음으로써 세계적으로도 지위.. 2019. 9.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