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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기고 및 칼럼/2) 한국일보 칼럼(2013~2014)19

[사색의 향기] 소치와 소치! 2014년 2월 25일자. 소치, 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는지요. 며칠 전 끝난 동계 올림픽 개최지가 떠오르신다고요? 그런데 저는 올림픽이 열리는 기간 내내 소치 허련(1809~1892)이라는 화가이자 관리, 그리고 추사 김정희가 "그의 그림이 내 것보다 낫다"고 했다는 인물이 끊임없이 떠올랐습니다. 그렇다면 소치(小癡ㆍ작을 소, 어리석을 치)라는 겸손한 호(號)를 가진 이 분에 대해 저는 어디서 알게 되었을까요? 당연히 백과사전을 통해서였습니다. 인터넷만 켜면 언제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는 백과사전이 아니라, 제 방 한편에 자리하고 있는 과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식 백과사전인 을 비롯해 , , 그리고 '한글판' 등을 통해서 소치와 소치의 후손들이 오늘날까지 우리 화단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확인했던 것입니다. 저는 눈에 보이지 .. 2019. 9. 30.
[사색의 향기] 제발, 제발, 2013년 12월 3일자. 얼마 전 중견 출판사 하나가 또 사라졌다. 책 좀 읽는다 하면 대부분 아실 만한 출판사인데, 결국 출판의 불황이라는 파도를 이길 수 없었던 듯하다. 그런데 이런 소식은 묻히는 반면 어떤 출판사에서 자기네 책을 사재기했다는 소식은 빨리도 뉴스가 되었다. 그렇게 해서 독자 여러분은 또다시 양식을 갖춘 출판사들이 겪는 고통은 전혀 모른 채, 출판업자라는 것들이 얼마나 부도덕하고 치사한 자들인지 확인하고 스스로 자위한다. '내가 책을 안 읽는 까닭은 바로 출판업자들이 하는 짓이 이렇기 때문이다.' 이제껏 1,000 종 가까운 책을 출간한 우리 출판사 책 가운데 가장 많이 팔린 책은 10년이 넘는 기간에 걸쳐 3만 부 정도 나갔다. 그리고 현재 창고에 보관되어 있는 책은 10만 권이 넘는다. 재고도서를 안으면 그.. 2019. 9. 30.
[사색의 향기] 청년들이여, 세상을 품어라, 2013년 11월 12일자. 최인호, 고2 때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 소설가로 등단. 황석영, 고교 때 사상계를 통해 등단. 주시경, 20세 때 에 입사, 한글 기사 작성 주도. 전태일, 22세 때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분신 저항. 노무현, 15세 때 이승만 생일 기념 글짓기 대회에 항거하다 정학(停學) 처분. 김의기, 21세 때 전두환의 광주 학살에 저항하는 선언문을 남기고 기독교회관에서 투신. 정태춘, 18세에 유신 성명을 듣고 재수 생활을 접고 목욕탕 보일러 불을 때며 노래 만들기 시작. 대한민국의 오늘을 만든 이들은 청년이다. 자신의 삶을 어디에 바쳐야 하는지 깨닫고, 그 길을 뚜벅뚜벅 걸어간 스무 살 전후의 청년들이다. 그러하기에 세상은 청년들 뜻대로 이루어지고, 결국 청년들의 것이다. 그러나 2014년을 앞에.. 2019. 9. 29.
[사색의 향기] 오래된 삼각관계, 2013년 10월 22일자. 그 해, 그의 나이 82세였다. 그 해 백성들의 평균수명이 42세였으니, 백성들보다 두 배 가까이 산 상태였다. 국부(國父), 즉 나라의 아버지라고 불린 까닭을 알겠다. 그래서 그의 생일이 되면 대부분 언론이 '오늘은 대통령의 탄신일, 만수무강을 기원' 같은 제호 아래 '각하의 흰머리는 애국하는 마음에서 피어오른 고난의 상징'이라는 등 소름이 돋는 기사를 내보냈다. 이를 보면 그는 스스로 민주주의의 산물이라기보다는 하늘이 내린 '신'이거나 '하늘' 그 자체였다고 믿었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그가 태어날 무렵 존재했던 왕조국가의 '신'이거나 '하늘'이었던 이들조차 갖지 못한 걸 그는 가졌으니 바로 만수무강의 달란트였다. 우리 겨레에게 세계 어느 나라에 비해서도 자랑스러운 업적을 전해준 세종이 54세, 정조가.. 2019. 9. 29.
[사색의 향기] 세상과의 불화, 2013년 10월 1일자. 오랜만에 찾아간 의사가 말을 건넨다."아, 지난번에 추천해 주신 책, 정말 재미있었어요. >인가?" "정말 재미있죠? 저도 그 책 한 권으로 니체를 이해했어요." "그동안 잘 지내셨죠?" "아니요. 잘 지냈으면 병원에 왜 왔겠어요? 요즘 영 좋지 않네요." 사실 요즘 난 세상과의 불화를 뼈저리게 확인중이다. 이곳은 내가 머물 곳이 아니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나와 함께 머물고자 하는 사람도 썩 많지 않은 듯하다. 그렇다고 나 또한 이곳을 떠나고 싶지 않다. 모든 것을 훌훌 털고 떠나기에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온 몸의 구멍이란 구멍에서는 끊임없이 '당신 이 일 해야 해요.' 하고 수많은 일들이 비집고 나온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형국이다. 그런데도 세상은 끊임없이 나와의 불화를 조장한.. 2019. 9. 29.
[사색의 향기] 역사란 무엇인가, 2013년 9월 10일자.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제나라의 귀족인 최저가 군주를 시살했다. 이 사실을 제나라 사관(史官)이 기록하였다. '최저가 장공(莊公)을 시살하다.' 그러자 최저가 그 사관을 죽였다. 그러자 사관의 아우가 다시 기록했다. '최저가 장공을 시살하다.' 최저는 아우마저 죽였다. 그러자 사관의 막내아우가 다시 기록했다. '최저가 장공을 시살하다.' 최저는 어쩔 수 없다고 여겨 막내를 살려두었다. 그리하여 최저의 행위는 영원히 남게 되었다. 역사가 무엇인지 서양의 학자들이 형이상학적으로 정의하기 훨씬 전, 동양에서는 실제 상황을 들어 우리에게 역사가 무엇인지 알려주었다. 그렇다면 왜 인간은 목숨을 걸고 역사를 기록하는 것일까? 시쳇말로 돈도 되지 않는 역사! 그래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는 역사학과가 대학에서 사라져가는.. 2019. 9. 29.
[사색의 향기] 한국일보여, 모차르트의 길을 가라, 2013년 8월 19일자. 그는 1732년 3월 31일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77세 되던 1809년 5월 31일 사망했다. 그로부터 24년 뒤인 1756년 1월 27일 같은 오스트리아에서 그의 후배가 태어나 35세 되던 1791년 12월 5일 사망했다. 그리하여 24년 늦게 태어난 후배는 선배보다 오히려 17년 일찍 세상을 떠났다. 앞의 그는 교향곡 '시계', 현악4중주 '종달새' 등으로 유명한 요셉 하이든이고, 뒤의 그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사실은 두 사람 모두 죽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결국 사람은 모두 죽는다. 그리고 남은 것은 그들이 오선지 위에 그려 넣은 악보다. 나는 우리나라 대통령 가운데 누가 가장 뛰어난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한 가지 사실은 안다. 자신이 평범한 시민과 똑같다는 사실.. 2019. 9. 29.
[사색의 향기] 무라까와 하루키씨에게 경의를 표하며, 2013년 5월 31일자. 지금부터 100여 년 전, 귀하의 조국인 대일본제국은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아시아 연대론을 주장했지요. 그런데 그 방식을 되돌아보면 참으로 낮은 수준이었습니다. 이웃을 지배하기 위해 고작 힘을 동원하다니! 그런데 당신의 조국인 일본은 천박하고 막무가내형 인간을 그토록 많이 배출하면서도 세계 최상위 수준의 독서량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당신 나라에서 힘깨나 쓰는 자(정신대 망언이나 독도 망언 따위를 늘어놓는 기묘한 인간들 말이에요)들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저조차도, 일본인들의 독서량에는 두려움을 느끼곤 합니다. 결국 책 많이 읽는 자들이 책 읽지 않는 자를 지배할 거라 여기는 것은 어찌 보면 집단지성의 힘을 믿는 합리적 판단일 테니까요. 그러나 이 편지를 당신에게 띄우는 까닭은 따로 있습니다. 그건 당신 선조.. 2019. 9. 29.
[사색의 향기] 황석영 선생님께, 2013년 5월 9일자. 이번 주, 우리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습니다. 선생님의 책이 사재기 대상이 되었고, 이를 안 선생님께서 분노한 끝에 작품의 절판을 선언하셨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사실 사재기라는 참으로 독특한 행동은 세계 역사상 우리나라를 제외하고는 유래가 없는 짓거리입니다. 자기 제품을 자기가 사다니! 그렇다면 왜 출판사들은 자기가 출간한 책을 다시 사는 걸까요? 사실 이런 질문은 할 필요도 없습니다. "출판도 장사야. 그러니 팔리지 않으면 망하는 게 당연하고, 많이 파는 자가 성공한 출판인이지. 많이 팔기 위해서는 베스트셀러 목록을 이용해 독자들의 판단을 현혹시키는 게 가장 효과적이고" 하는 사고가 출판계를 주도하면서 발생한 당연한 시장 논리니까요. 그런 까닭에 저는 오래 전부터 베스트셀러 목록 발표를 하지 말자고 주장.. 2019. 9. 29.
[사색의 향기] 저작권, 넌 과연 무엇이니?, 2013년 4월 18일자. 콘텐츠 전성시대라고 하는 오늘날, 수십 년 전만 해도 누구도 모르던 저작권이라는 무시무시한 단어가 이제는 목 위의 칼날처럼 시민들의 삶을 위협하는 시대에 살다 보니 네가 도대체 누구인지 궁금해졌단다. 그래, 모두들 말하더구나. 저작권을 보호해 주지 않으면 창조적인 컨텐츠가 생산되지 않고, 결국 나라의 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맞는 말이지. 몸으로 만드는 것의 가치는 인정해 주지만 머리로 만드는 것에 대해서는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한다면 나부터도 화가 난단다. 그런데 말이다. 너 저작권은 정말 대가가 크지 않으면 태어나지 않는 존재니?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라는 불후의 명곡을 쓴 바흐가, "이 악보를 향후 70년, 아니 사후 70년 동안 팔아서 돈을 벌어.. 2019. 9. 29.